체 게바라·렘브란트·헤밍웨이…그들은 왜 베레모를 사랑했나

입력 2024-02-15 18:39   수정 2024-02-16 03:08


멀리서 모호한 냄새가 나면 어김없이 베레모를 눌러 쓴 철학교수님께서 지나가셨다. 그 모호한 냄새란, 악취라고 할 순 없지만 향기라고 하기엔 감내하기 힘든 수준. 파이프 담배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묘한 내음과 졸리고 재미없던 철학 수업의 힘겨운 기억과 함께 베레모는 골똘한 연구자, 지루한 학자의 이미지로 뇌리에 굳게 자리 잡았다.

베레모 하면 당신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녹색이나 적색의 명징한 색상과 함께 특정 군부대를 떠올리거나, 고무줄 달린 노란색 유치원 모자 혹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짙은 눈매의 남미 혁명전사 체 게바라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프랑스 청년을 떠올릴 수도 있으며 많은 경우 미술, 음악, 문학적 탁월성으로 오래 기억되는 어떤 예술가가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떠올리든 챙이나 림이 없는 단순한 형태의 이 모자는 그렇게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의 사랑을 받은 역사가 오랜 출처를 확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베레모가 부자, 기득권자 등 ‘다 가진 이’의 모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더 나은 이념이나 더 나은 정부 혹은 더 아름다운 예술적 그 무엇을, 심지어 더 아름다운 이성과의 짜릿한 시간을 갈구하던, 혹은 이상을 추구하는 이들이 선택한 모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결핍의 빈자리를 메워 더 채우고, 성취하고,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지닌 이들의 모자, 베레! 이 모자에 대해 더 깊이 살펴보면서 나도 써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될까? 아니면 이 모자는 내가 쓸 모자는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될까? 일단 베레모의 다채로운 사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란다.

학자들은 베레모의 원형이 유럽의 고대 청동기 문명과 연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존하는 모자 중 가장 단순한 형태이니 머리에 무엇인가를 쓴다는 행위가 가능했을 무렵부터 존재했을 것이란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현대 베레모의 뿌리에 대해서는 피레네산맥 근방의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걸친 바스크 지방 유래설이 가장 일반적인데,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 프랑스인들의 노력으로 가장 프랑스적인 모자로도 받아들여진다. (사실, 프랑스인들이 이 모자를 그렇게 잦은 빈도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베레모로 기억되는 수많은 예술가 가운데 손에 꼽히는 이는 네덜란드 출신 화가 렘브란트가 있다. 그는 수십 장의 자화상을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자화상 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베레모가 등장한다. 호시절을 과시할 때도, 상황이 좋지 않아 인생의 뒤안길에서 화려했던 시절을 추억할 때도 서로 다른 베레모를 쓴 모습을 평생 스스로 그려낸 이 솔직한 화가의 자화상을 찾아 인생의 희로애락의 단면을 살피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다양한 여러 면모로 의미심장한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음악적 천재성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가운데 과시하는 속물근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방법론으로서 베레모가 종종 활용됐음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요소다. 바그너의 위대한 음악성과 그 이면의 생활사의 추함 사이 간극을 살짝 올려진 베레모로 덮을 수 있을까? 그 점을 가늠해 보는 것도 바그너의 음악 세계를 살피는 색다른 방법론이리라.

베레모와 군 유니폼의 연결고리는 1889년 프랑스의 알프스 산악 부대가 베레모를 유니폼에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휴대도 편하고 왠지 근사해 보이는 이 모자가 본격적인 특수부대의 모자로 인식된 것은 영국 탱크 부대 덕분이다. 복잡한 기계장치로 비좁은 탱크 안에서 머리에 기름을 묻히지 않고 좁은 내부와 해치를 드나들기 좋겠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영국의 첫 탱크 부대 유니폼으로 1924년 승인됐기 때문이다. 그 후로 다양한 색상의 베레모가 여러 부대의 유니폼으로 종종 채택되면서 자연스럽게 군의 이미지를 품게 된다.

베레모를 가장 전투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에서 명성을 날린 남미의 투쟁 전사 체 게바라의 사진일 것이다. 짧은 인생을 투쟁과 이상을 위해 살다간 게바라를 몇몇 작가들이 칭송하면서 베레모를 쓴 그의 사진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지워지기 힘든 흔적을 남겼고, 그의 선량한 눈빛과 선한 이목구비로 영문도 모르는 후대 사람들에겐 잘생긴 베레모의 상징이 됐다.

베레모의 여성성은 1930년 전후에 활동한 커플 갱단 보니와 클라이드의 주인공 보니 파커에게 공을 돌려야 할지 모른다. 미국 전역에 숱한 화제를 뿌린 이 커플 갱단의 아슬아슬한 범죄와 도주 행각은 시간이 한참 지난 1967년 커플의 이름으로 제작된 ‘보니와 클라이드’(한국 제목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영화에 보니 파커로 등장한 신인 여우 페이 더너웨이의 패션과 함께 당시의 트렌드를 획기적으로 바꾸면서 가장 아름다운 베레모로 패션사에 족적을 남겼다. 더 나은 내일을 일탈로 꿈꿔야 했던 절망의 아이콘에게 베레모는 어떤 의미였을까?

1940~1950년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비트족이 종종 검은색 베레모를 쓰고, 1960년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익 증진을 위해 결성된 무장단체이자 정당인 흑표당이 검은색 가죽 베레모를 채택하면서 베레모는 (앞서 언급한 게바라의 이미지와 버무려져) 진보와 저항, 그리고 반사회적 이미지를 얻는다. 사실 예술계의 베레모 사랑도 언급하자면 끝이 없다. 피카소와 그의 뮤즈 마리테레스, 디지 길레스피를 비롯한 많은 재즈 뮤지션, 존 레넌과 그의 아내, 그리고 문학계의 대표 멋쟁이 헤밍웨이는 물론 수많은 예술가들이 베레모를 쓴 멋진 사진을 많이 남겼으니 검색창에서 ‘beret’를 꼭 찾아보길 권한다.

예술적 탁월성, 살기 좋은 세상, 혹은 꿈에 그린 이상!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한 이들이 즐겨 쓴 베레모는 당신의 모자일까? 짧게 기술한 베레모 이야기를 통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그림=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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